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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된 이야기

정약전, 조선 후기 천재 정약용의 형 그리고 '자산어보'

by 박CINE 2021. 3. 28.

 영화 '자산어보'의 주인공인 정약전은 조선 후기 조선이 낳은 천재로 불리던 정약용의 형으로, 정약전은 정조 사후 천주교로 인해 박해를 받아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조선시대 어류 도감인 '자산어보'를 집필한 주인공입니다.

조선의 천재 형제 정약용과 정약전

 조선의 천재라고 하면 꼽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다산 정약용.
 정약용은 유학자이자 실학자 여기에 법의학, 지리학, 언어학에도 능통한 작가 이자 시인이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건축에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독창적인 설계로 거중기를 만들어 내면서 1789년 한강에 배다리 놓는데 그리고 1794년 수원성을 쌓는데 큰 공헌을 한 만능의 인물이었죠.

영화 자산어보에 정약전 역으로 출연하는 설경구 배우의 모습
영화 자산어보의 정약전, 출처=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런 정약용이 자신보다 낫다고 칭한 인물이 있으니 그 인물이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입니다. 정약용은 유독 형제 중 정약전과 가까워 저술에 대해 묻곤 하였다고 하죠. 이때 정약전은 일일이 답을 해주었는데 훗날 정약용은 형이 조언한 데로 하면 의심이 났던 글이나 서로 맞지 않았던 수가 신기하게 모두 들어맞아 틀림이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네요.
 정약전은 정약용의 권유로 과거에 응시해 벼슬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정약용은 당시 조선의 왕인 정조에게 총애를 받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벼슬에 오른 정약전을 두고도 정조는 '정약전의 준걸 한 풍채가 정약용의 아름다운 자태보다 낫다'라고 하며 그도 총애하기도 했다 합니다. 하지만 그 총애는 정조의 승하 후 어려운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생활중 저술한 어류 도감 '자산어보'

 정약전의 형제들은 큰 형을 제외하고 천주교와 연관이 있었죠. 그리고 정조의 승하 후 이 형제들은 천주교로 인해 신유박해로 귀양살이를 하는 등 이전과 다른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때 정약전은 신지도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데 특히 흑산도에서 섬의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영화 '자산어보'의 모티브가 된 '자산어보'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물고기를 잡으려 배를 타는 두 주인공의 모습
자산어보,출처=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자산어보'는 조선 시대에 저술된 '어류 도감'으로 정약전이 흑산도에 있을 당시의 어류를 비롯한 갑각류와 조래류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실제 물고기를 해부해 직접 관찰하거나 어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해 충실한 내용을 기록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합니다. 특히 이 저서에는 아귀가 바닷물속에서 낚시를 하듯이 먹이를 잡는다거나 어류의 아가미에 관한 구조와 호흡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으며 생선의 맛과 요리에 대한 내용도 서술하고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자산어보는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은 하였으나 어류 도감이라 하면 당연히 있을법한 그림이 없다고 하는데요. 이유는 정약전이 그림과 관련해 동생인 정약용과 논의하다 그림보다 글로 상세히 서술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는 동생의 충고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산어보'를 저술하는 과정에서도 동생인 정약용의 의견을 묻는 등 우애를 넘어 학문적으로도 신뢰를 하던 조선 후기 천재 정약전 형제. 하지만 정약전이 유배 생활 16년에 접어들 무렵 우이도에서 사망하면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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