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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된 이야기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던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 故 다이애나 스펜서

by 박CINE 2021. 11. 9.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 퐁드랄마의 지하차도에 한 차량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 차량에는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던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가 타고 있었으며 그녀는 현장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사고차량 모습
다이애나비가 탑승했던 차량

사랑받았던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례식

장례식 장면
켄싱턴 궁의 조화들과 장례식

 그녀는 프랑스 여행 중 당시 남자 친구인 도디 파예드와 길을 나서던 찰나 파파라치 무리가 나타났고 이들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올리다 사고가 나게 된 것이죠. 다이애나의 죽음은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으며 사고 이후 그녀가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증명하듯 수많은 조문객들이 런던에 있는 그녀의 궁전인 켄싱턴 궁으로 찾아와 조화를 남겼고, 그 조화는 켄싱턴 궁의 문에서 약 900m까지 뻗어 있었다고 하죠. 당시 그녀의 나이 36세, 1997년 9월 6일 전 세계적인 시선이 집중된 채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례식이 거행이 됩니다.


화려한 결혼식으로 20세기의 신데렐라로 불려

찰스 왕세자와의 세기의 결혼식 모습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식

 국내에서는 다이애나 왕세자비로 알려진 다이애나 스펜서는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혼인해 영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영국의 왕세자비이자 윌리엄 왕세손의 어머니입니다.
 다이애나 스펜서는 찰스 왕세자와 20세의 나이로 1981년 7월 29일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르는데요. 결혼식에 사용된 드레스에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수천 개의 진주와 스팽글로 장식, 여러 명의 들러리가 필요했던 7미터의 긴 트레인으로 여성들의 로망이 되기도 했었죠.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 이후 당시 다이애나의 의상과 장신구는 유행의 아이콘이 되었고 그녀는 20세기의 신데렐라로 불리며 부러움을 샀습니다.


남편인 찰스 왕세자의 불륜, 불행한 결혼 생활

 결혼 후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를 낳으며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던 다이애나. 특히 왕자의 양육을 유모에게 맡기던 것이 왕실에서 일반적이었던 관례를 깨고 두 왕자에게 직접 모유를 수유하는 모습을 보이며 애정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세로 인해 파파라치들이 달라붙으며 그녀를 괴롭힌 거죠. 하지만 이보다도 더 한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남편 찰스 왕세자의 불륜이었습니다. 사실 찰스 왕세자는 결혼 전부터 좋아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왕세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다이애나와 결혼한 것. 찰스 왕세자가 좋아하던 여인은 유부녀로 자신이 좋아하던 여인과 결혼을 하려 할 경우 왕세자 자리를 내놓아야 했었다고 하네요. 이 사실을 안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에게 그녀와 헤어질 것을 요구하지만 그 요구는 들어지지 않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폭식증과 거식증도 겪으며 지쳐갔다고 합니다. 

찰스 왕세자 부부
화목해 보이는 두 사람


 이밖에도 남편의 외도로 힘들던 차, 유난히 인기가 많았던 다이애나에게 왕실과 찰스 왕세자의 귀족 친구들은 그녀를 힘들고 지치게 했다 하는데요. 그들은 악의적인 기사를 내도록 지시하는 등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그녀의 문제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당시 다이애나의 인기는 매우 높아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았기에 왕실은 이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들었다고 하는데, 속은 까맣게 썩어갔지만 다이애나는 왕실의 통제 아래 화목한 부부의 모습을 바라는 대중을 위해서  화목한 모습을 애써 보이며 언론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었죠.


염문설

 바람난 남편과 주변의 환경으로 인해 자살 시도까지 하며 피폐해진 다이애나는 분노하며 결국 어긋난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혼을 죄악시하는 왕실의 영향으로 당시 이혼마저 쉽지 않았던 현실. 다이애나는 남성과의 여러 염문설에 휩싸이며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자신의 경호원이었던 제임스 길베이를 시작으로 미국의 신흥 종교 교주 앤터니 로빈슨, 은행원인 월리엄 밴 스트로 벤지, 육군 소령 제임스 휴이트 등과의 염문설이 돌아 화제를 모았습니다. 특히 당시 승마 교관이었던 제임스 휴이트의 경우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로 인한 위안을 찾기 위해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고 그녀도 이에 시인해 왕실의 분노를 사기도 했죠. 더군다나 둘째 왕자인 해리 왕자의 아버지가 찰스 왕세자가 아닌 제임스 휴이트라는 루머가 돌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다이애나 스펜서는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혼 후에도 그녀의 염문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럭비선수인 윌 칼링거,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인 케네디 주니어, NBA 농구 선수인 데니스 로드맨, 파키스탄 출신 의사인 하스나트 칸, 그리고 마지막에 교통사고로 함께 유명을 달리한 이집트 출신의 사교계 명사 도디 파예드 까지.. 워낙에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다이애나였기에 당시 이 염문설들은 전 세계의 언론에 떠들썩하게 퍼졌습니다.


봉사활동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다이애나

 이혼하기 전 그녀는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존경을 받곤 했습니다. 병원과 보호시설에서는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교감하고 싶다는 이유로 왕실의 규정을 어긴 채 에이즈 감염자와 그 자녀들을 품에 안아 가벼운 접촉으로도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는 편견을 깨기도 했죠. 특히 결혼 전 유치원 교사일을 하기도 했던 그녀는 병원과 학교 그리고 고아원 등을 방문하며 어린아이들을 찾아가 자선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봉사 활동을 자신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에게도 하도록 해 윌리엄 왕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두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 준 분'이라 말하기도 했죠.

봉사 활동 장면
봉사활동 모습


 이혼 후에는 더 활발하게 봉사를 했는데 아프리카의 빈민촌 구호 및 적십자 활동 그리고 대인지뢰 제거 운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녀가 활발히 대인지뢰 제거 운동을 벌인 대인지뢰 금지 국제운동 본부는 그녀의 사망 직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비록 염문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나 그녀는 이혼 전이나 후에도 사망 전이나 사망 후에도 전 세계에서 여전히 사랑받는 영국의 왕세자비로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다이애나의 모습
윌리엄 왕자와 다이애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일생을 다룬 영화들

왕세자비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다이애나와 스펜서
古 다이애나 스펜서 영화 


 화려한 듯 보였으나 힘든 삶을 살았던, 하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던 다이애나 왕세자비 故 다이애나 스펜서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드라마를 비롯해 에이미 새콤베 주연의 '다이애나 : 민중의 왕세자비에게 바치는 헌사', 나오미 왓츠 주연의 '다이애나' 등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북미 기준 2021년 파블로 라라인 감독에 의해 영화'스펜서'로 제작.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유명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왕세자비 역을 맡아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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