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 노벨상 보다도 더 특별한 영화 같은 인생을 산 여성
1995년 4월 20일 프랑스의 위인들이 묻히는 팡테옹에 마리 퀴리는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안장이 됩니다.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마리 퀴리를 일컬어 "내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 중 명예 때문에 순수함을 잃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죠.
식민지 지배를 받던 폴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라듐을 발견해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최초로 노벨상을 2회 수상한 수상자가 되지만 스캔들로 인해 모든 걸 잃을 뻔했던 여성, 그리고 발견한 라듐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 과학자 '마리 퀴리'.
영화 같은 인생을 산 '마리 퀴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억압과 차별의 시대에 태어난 마리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Maria Skłodowska-Curie)는 1867년 11월에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교육자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Maria Salomea Skłodowska)로 남편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와 결혼해 남편의 성을 따르면서 위인전에는 '퀴리 부인'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죠.
마리 퀴리가 태어난 폴란드는 당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요.
폴란드는 식민 지배를 받았던 만큼 폴란드와 관련된 언어나 역사 교육에 억압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마리 퀴리는 공립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당시 폴란드의 대학엔 여성들이 들어갈 수 없어서 대학 입학에 대한 남녀 차별이 없는 프랑스로 건너가 대학을 가고 싶어 하죠.
하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마리는 3년 동안 가정교사로 일을 하다 1891년에 둘째 언니 부부의 돌봄을 받으면서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소망했던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마리는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됩니다.
졸업을 한 마리는 폴란드로 돌아가려 하지만 훗날 결혼을 하게 되는 피에르 퀴리의 만류로 프랑스에 남아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연구를 계속하게 됩니다.
피에르 퀴리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돕던 마리의 재능을 알고 학업을 지원했던 지지자였죠.
마리 퀴리 노벨상을 받다
1895년에 마리는 피에르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그들이 결혼하던 1895년에는 X선이 발견이 되고 다음 해인 1896년에는 우라늄에서 방사선이 나온다는 게 발견이 됩니다.
이 발견은 당시에 획기적인 발견이었는데요.
마리와 피에르 부부는 여기에 더해 우라늄의 방사능 세기가 400배나 되는 폴로늄을 발견하고 또 우라늄의 200만 배나 되는 라듐을 발견하게 되죠.
1903년 마리와 피에르는 라듐 연구로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는데 마리는 여성으로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기록됩니다.
마리 스캔들로 모든 걸 잃을 뻔하다.
1906년 마리의 남편 피에르는 마차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요.
피에르는 이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남편을 잃은 마리는 슬픔에 잠겼지만 이내 "어쨌든 계속해나가야만 한다." 던 생전 피에르의 말을 떠올려 연구를 계속 이어갑니다.
마리는 피에르를 이어 피에르가 근무하던 소르본 대학교에서 피에르의 뒤를 이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한 최초의 여성 교수로 남게 되죠.
그러던 1911년 마리 퀴리는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는데요.
1901년 노벨상이 생긴 후 첫 2회 수상자이자 물리학, 화학 수상자가 될 상황에 스캔들이 터져 버립니다.
스캔들의 대상은 남편인 피에르 퀴리의 제자 폴 랑주뱅이었죠.
당시 폴 랑주뱅은 유부남이었을 뿐 아니라 죽은 남편의 제자였던 관계로 스캔들의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마리는 노벨상을 수상한 자랑스러운 프랑스 과학자에서 단란한 가정을 파괴한 부도덕한 폴란드인 여성으로 낙인이 찍혀 버리는데요.
이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폴 랑주뱅과의 스캔들은 폴 랑주뱅의 아내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정확한 내용은 추측만 있을 뿐 전해지지 않는 듯합니다.
마리 퀴리 노벨상보다 더 특별한 여성이 되다.
가장 권위가 높았던 노벨상, 그 노벨상의 노벨 위원회가 스캔들에 대해 알게 되는데요.
노벨위원회는 마리에게 노벨상을 사양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마리는 충격을 받게 되지만 고심 끝에 "노벨상은 연구의 업적에 대해 주는 상이고 사생활과 연구는 별개"라는 답변을 하며 화려한 모습으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여합니다.
그러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데요.
마리는 친한 의사로부터 전장에 X선 장비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에 X선 진단기를 실은 이동용 차량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되고 당시 '여성은 전선의 출입을 막는다'라는 규정을 넘어 여성 X선 전문 인력을 배출해 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구하는데 노력합니다.
노벨상을 받았던 영광도 밀어냈던 스캔들이지만 마리는 특별한 자신의 능력으로 노벨상의 영광을 밀어낸 스캔들을 떨쳐내게 되죠.
라듐으로 인해 인생을 마감하다.
라듐의 발견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마리이지만 마리는 라듐으로 인해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결과 라듐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데요.
마리도 과도한 방사선 노출로 백혈병과 골수암 등이 겹쳐 67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죠.
마리 퀴리는 이후 2차례의 노벨상의 공로를 인정받아 그동안 남성 위인들만 묻혔던 팡테옹에 여성 최초로 안장이 되게 됩니다.
최초의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고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광도 이겨내지 못했던 난관을 이겨낸, 특별한 마리 퀴리의 삶은 위인전뿐만 아니라 뮤지컬과 영화로도 재생이 되고 있습니다.
관련 포스팅
영화 마리 퀴리 위인전 이 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영화가 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창원, 신출귀몰 했던 희대의 탈옥수 (2) | 2020.11.30 |
---|---|
다이나모 작전, '영화 덩케르크' 의 소재가 된 됭케르크 철수 작전 (2) | 2020.11.27 |
KKK단 쿠 클럭스 클랜,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미국 인종차별의 상징 단체 (4) | 2020.11.23 |
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한 영화 같은 인생을 살다. (0) | 2020.11.08 |
보니 앤 클라이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영화 같은 인생을 산 커플 범죄자 (0) | 2020.11.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