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극으로 치닫던 시기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했던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 일본은 항복을 하게 되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가 주목을 받게 됩니다.
히틀러 보다 먼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맨해튼 프로젝트'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원자폭탄 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제2차 세계대전,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물리학자로 핵무기를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도적 인물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는 미국의 주도하에 영국과 캐나다가 참여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죠.
1938년 유럽에서 우라늄 원자핵 분열 실험 성공, 이후 독일이 우라늄의 유통을 중단하자 당시 유럽과 미국에는 독일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 곧 히틀러의 손에 핵무기가 들어갈 수 있다는 소식이 퍼지게 되는데요. 이에 과학자들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통해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하며 핵무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행되게 됩니다.
미국은 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서 당시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존 폰 노이만을 비롯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등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을 포섭하였고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하며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진행하게 되죠. 여기에 개발을 위해 여러 연구소에서 연구가 진행되던 중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실제로 원자폭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또 다른 연구소를 계획하게 되는데, 그 연구소의 소장을 맡게 되는 이가 바로 향후 원자 폭탄의 아버지라 불리게 될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입니다.
불안정한 모습이기는 했으나 9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오펜하이머
1904년 4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난 원자 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는 기성복이 태동하던 시기 양복 사업을 하던 아버지 덕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고 하죠. 아버지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 교육 열정이 엄청났다고 하는데요. 훌륭한 교육환경에서 자란 오펜하이머는 학습능력도 탁월해 하버드 대학교에서 4년제 학사과정을 3년 만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당시 미국보다 과학이 발달한 영국과 독일로 유학을 가 신학문이었던 양자역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공부를 잘 하기는 했으나 그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영국에서는 지도교수를 독사과로 독살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고 독일에서는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교수를 끌어내린 후 자기가 교단에서 수업을 하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론적인 면에서는 박식했던 그였던 지라 독일의 괴팅겐 대학에서 9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성격이야 어떻든 이후 그는 미국에서 교수이자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양자역학과 천체물리학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됩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
그러던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 태평양 함대의 기지가 있는 하와이 오아후 섬 진주만에 공습을 한 진주만 공습을 벌이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미국은 기지에 정박해 있던 7척의 전함 가운데 5척이 격침, 200여 대의 항공기가 파괴되었으며 여기에 사망자도 2,000여 명이나 발생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분노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에 미국은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고 공격해 승기를 잡게 되지만 일본은 이후 벌어진 회담에서도 항복을 거부하게 되는데..
그러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오펜하이머가 주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진 '리틀보이'와 '팻맨'이라는 이름을 가진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지게 되고 두 도시는 거의 완파되며 20여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그제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죠.
오펜하이머 빨갱이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쫓겨 나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할 당시 애국심에 불타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낸 성과는 남다르고 보람되었어야 했지만 성과는 둘째치고 보람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네요. 비록 전쟁을 끝낸 데 큰 기여를 해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존경의 대상이 되었으나 핵무기의 위력을 확인한 그는 엄청난 고뇌에 빠져 지냈다고 하죠.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주도한 핵무기로 20여만 명의 사상자를 냈으니 충격이 적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냉전시대로 접어든 시기 오펜하이머는 소련과 경쟁적으로 개발하던 수소폭탄 개발을 극렬하게 반대하게 되는데 1949년에 소련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하자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반핵 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로 의심을 받아 빨갱이로 몰리며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게 되는 거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제작되는 오펜하이머의 일생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 '덩케르크'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 큰 흥행을 거둔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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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펜하이머와 관련된 영화는 저널리스트인 카이 버드와 미국 역사학 교수인 마틴 셔원에 의해 출간돼 2005년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을 받은 바 있으며 2006년에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원작으로 해 제작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CG 촬영을 잘하지 않고 실제 촬영을 주로 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기에 벌써부터 진짜로 원자 폭탄을 터트리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네요. 사실적인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오펜하이머의 일생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됩니다.
영화는 2021년 11월을 기준으로 2023년 7월 21일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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